라이프로그


2018/12/10 14:30

#10. 센스8 정독

2주에 걸쳐서 센스8 시즌1, 2 시청이 모두 끝났다.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피날레 에피소드까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고, 진지하게 봤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치고는 센스8 세계관에 매우 푹 빠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뚝 끝나버리고 피날레 에피소드 한 편이 드라마를 땜빵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초반 에피소드에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친절하지가 않았다. 이렇게 생소한 소재로 거대한 세계관(세계관이라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ㅎㅎ)을 구축하는 것이면서도 시청자에게 아주 찔끔찔끔 정보를 준다. 말하자면 튜토리얼이 (의도적으로)부실한 느낌. 전개도 너무 더뎌서 선(배두나)과 리토 아니었으면 참고 보지 않았을 것 같다. 

보면서 느낀 몇 가지 부실한 설정을 꼽아보자면,
센세이트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는 부분이 의아하다. 태어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서로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같은 클러스터의 센세이트라고 생각해온 것도 아니고 나이가 모두 서른이 훌쩍 넘어간 (그러니까 현실의 때가 뭍고, 더이상 판타지를 믿지 않으며 편협하고 선입견이 생길) 나이에 센세이트의 존재를 간헐적으로 느끼는데도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너네들 도대체 뭐야!'라면서 자세히 알아보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모두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함. 

물론 센세이트들은 감정이나 지식, 정보, 능력 등을 모두 교류한다는 설정이므로 클러스터 안의 한 사람만 알게 되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알게 된다는 설정은 있지만, 그 한 사람마저(내 기억이 맞다면 라일리나 윌) 너무 늦게 알아서(...) 대체 전혀 다른 인종이 갑자기 불쑥 내 옆에 나타났는데 거의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 

또 하나 의문인 것은 센세이트의 출산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센세이트를 '출산'하는데, 출산이라는 것은 아마 센세이트들을 각성시킨다는 의미로 쓰인 것 같다. '어머니' 역시 센세이트로 센세이트만의 능력(공간, 시간을 뛰어넘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빙의나 현신 ㅋㅋㅋ)을 통해 한 무리(클러스터)의 센세이트 그룹을 만든다. 그런데 또 그 센세이트들은 아무나 클러스터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한 날 한 시에 숨을 뱉은 자 8인이 한 클러스터가 된다는 것이 작중 설정. 

그렇다면 '출산'의 목적은 센세이트를 각성시키는 의미라는 것은 알겠는데, 한 날 한 시에 '호모 센소리움'으로 태어나는 아기가 전 세계에 8인만 있을 뿐인지. 그럼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 8인이 태어나는 순간 인식하거나, 살다보면 인식되어지는 것인지. 그래서 그들을 찾아 '출산'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센소리움으로 태어났는데, 각성하지 못하면 센세이트로 살 수 없는 건지. 꼭 센세이트로서 클러스터에 묶여야만 센소리움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근데 그런 점들을 '그러려니'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대단하다. 어쩌면 시즌이 중간에 끝나버려서 더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을 수도 있고. 

보다보니 센세이트 세계에 너무 빠져들어서 일상생활 중에 자꾸 어깨 뒤에 누가 서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 것도 소재와 연출의 힘이다. 시즌 1, 2를 모두 끝낸 지금은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내 옆에 모르는 누가 서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센세이트라서 세계에 내 클러스터가 있고 때때로 그들을 방문하면서 내면을 확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아마 이렇게 무한정 발전하고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한 (별 것도 아닌)인간이 센소리움을 사냥하는거겠지만.

개인적으로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전면에 부각되서 좋았다. 게이 1커플과 레즈 1커플,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성전환자이기도 한 성소수자 4인이 열연했는데, 편견을 깨는데 좋은 에피소드가 많았다. 리토 에르난도 커플 최애!! 리토만 나오면 너무 좋아서 웃고 있음ㅋㅋㅋ 리토는 느끼한 잘생김인데 그게 또 뒤로 갈수록 너무 순수한 영혼이라 정말 아끼고 아꼈다. 동성애가 밝혀져서 캐스팅 다 짤리고 배우 생명이 꺼져갈 때, 선을 찾아가서 '나 곧 노숙자 될 건데 한 번 체험해 보는거야' 하면서 울 때 완전 웃기면서 짠하면서 귀여우면서, 그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막ㅋㅋㅋ 나도 그런 착하고 순수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리토-에르난도-다니엘라, 이 셋의 우정이 참으로 아름다웠음.

아마 연출자 자체가 성소수자라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시 한 번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람이 다 똑같을 수 있나. 괜한 억압하지 말고, 증오하지 말고, 만약 병이 걱정된다면 (이성애자에게도 필요하듯)성교육을 잘 시키면 되지 않을까. 

또 하나 인상 깊은 장면은 8인의 단체 섹스 신, 그리고 출산 신. 단체 섹스 신은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듯했다. 각자 다른 인종의 몸과 인간 자체가 가진 아름다운 선을 아주아주 잘 살려서, 마치 현대무용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하여간 거대한 예술작품같았다. 출산 신은......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이 남ㅠㅠ 너무 무서웠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경이로운데 보는 당시에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말잇못. 남편한테 '나 절대로 안 낳을거야'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을 정도. 그동안 영화 드라마에서는 땀 뻘뻘 흘리면서 악쓰는 모습만 보여줬지 이토록 출산 장면을 리얼하게 보여준 것은 센스8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충격적이면서도 유익(????)했다. #본격성교육드라마

시즌3이 나와 줬으면 더더더 좋았겠지만, 넷플릭스가 그 제작비를 감당못해서 인기 많고 퀄도 좋았던 센스8을 중단해버렸다는 후문을 들었다. 제작자의 심정이 이렇게 이해가 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그냥 설정 자체도 사실상 6대륙 인간이 모두 다 출연하고 게다가 서로는 각각 고향에서 살면서 센세이트 특성으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느라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촬영하는 것 같은데...제작비가 어마어마할 게 뻔함. 그래도 하여간 아쉽다. 그 창의력을 계속 보고 싶었는데.

그 급작스러운 시즌종료로 나왔다는 피날레 에피소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마 워쇼스키 감독님들이 다음시즌에 구상했던 내용 모두를 축약해서 2시간 30분에 담은 것일텐데, 굳이 다 늦게 선의 럽라를 그린 것도 그렇고 조나스가 뜬금없이 자살폭탄테러를 한 것, 노미와 엄마의 급화해, 급기야 카피우스는 캐릭터 자체가 바뀌었다. 차 페인팅하면서 흥얼거리면서 춤출 때 도대체 누군가 했음. 엄청 차분하더니만 누가 이렇게 흥부자로 만든건가ㅋㅋㅋ 리토 흑흑 리토 분량도 전혀 맞춰주지 못한 것 등등 굳이 2시간 30분이나 할애하지 않아도 될 에피를ㅠㅠ 그래서 여러 문제로 시즌이 종료된 것은 이해하지만, 피날레 에피소드를 본 후로 너무너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만들지를 말지. 아놔.

미드의 형식에 맞게 그린 한국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아니 한국의 모습이 흥미로웠다기 보다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절대 일어날 수도 없는 전개가 마구 일어나는 걸 보니, 배경만 한국에 출연진만 한국이고 플롯과 상황은 모두 미국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약 워쇼스키 감독님들이 배두나가 아니라 아시아계로 중국이나 (흔히)홍콩을 선택했다면 똑같은 미국식 전개가 이뤄졌겠지. 홍콩이나 중국 등의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했다. 배경은 아시아 전개는 제작진에게 익숙한대로ㅋ 그래도 그동안 한국이 외국 영화에서 비춰졌던 것보다 훨씬 사실적인 한국으로 나와서 만족했다. 눈에 익은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하는 것도 부자연스럽지 않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처음 봤는데, 아주아주아주 재미있었다. 나도 약간 선입견이 있어서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드라마가 더 고퀄이라는 생각이 들고, 넷플릭스에서 자체 제작하는 것은 뭐 수준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싶었는데 완전 생각이 바뀌었다. 친구들이 추천한 드라마도 줄줄이 대기 중ㅋ 영화까지 믿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 면에 있어서는 엄청 보수적이고 하나도 도전적이지 않은 인간임ㅋㅋ

2018/12/05 09:13

수영수영수영수영수영 뜬구름 잡기



수영이 하고 싶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2018/11/29 19:08

#6. 싹을 틔운다는 것 결혼생활

아보카도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결혼 후 마음이 허해서 혹은 장난삼아서 혹은 가정을 꾸렸다는 안정감에 도취해 아보카도 씨를 발아시켜 보려고 했다. 알고보니 아보카도 씨앗은 따지자면 씨앗계의 타조알이라고나 할까. 두 달이 넘게 반신욕을 하고 있으면서도 실금 하나 보이지 않던 아보카도는 초보 발아꾼이 시도하기에는 고난도의 씨앗이었다. 초보 발아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아보카도의 머리(!)에 인공적인 자극을 주고 말았다. 아보카도의 발아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아주 작은 실금을 내 손으로 내주었다. 그리고 물에서 꺼내 흙 위로 자리를 옮겼다. 아보카도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내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물에 오래 잠겨 있다 나온 탓인지 내가 인위적으로 내 준 상처에 실같은 곰팡이가 끼는 것도 보았다. 살짝 절망감이 들었다. 나는 너무 답답해서 아보카도를 직접 쪼갰다. 겉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올라오지 못하는가 싶었...으면서 초보 발아꾼답게 나는 마음이 너무 급했기 때문이다.

   쪼개주고 나서도 한동안 아보카도는 잠잠했다. 벌어진 틈 사이로 뭐가 올라올 기미조차 없었다. 내가 심은 첫 씨앗! 물에 담가 애지중지 석 달을 지켜봤던 귀여운 보석! 포기해야 함이 슬펐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보카도를 하나 더 사 새 씨앗을 심을 작정으로 아보카도의 벌어진 틈을 힘을 줘서 벌려봤다.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한 네 속에 대체 뭐가 있는 것이냐.

   아니!!! 그런데 ‘쭈악!’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던 아보카도 단면에 동그란 뭔가가 있는 게 아닌가. 씨앗을 들어 올려 봤더니 씨앗은 자기 엉덩이에서 새끼손톱 반만 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반으로 찢은 것이다! 아. 초보 발아꾼의 말로란 3개월을 애지중지 기다려 온 제 씨앗의 뿌리를 제 손으로 갈기갈기 찢는 것이었던가.

   기쁨과 놀람, 자책, 후회가 섞인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보카도 껍질을 다시 오므린 뒤 제자리에 꽂아두었다. 그럼 뭐 하랴. 뿌리가 돋은 코어 부분이 찢어져 버렸는데. 뿌리가 다시 붙어줄까? 아메바처럼 잘려도 살아남아줄까? 아니면 그 생명력은 끝이 났을까. 나는 정말 바보다.

   결혼 후 집으로 몇몇 식물을 입양하면서 ‘생명을 돌보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이미 누군가 정성을 다해 예쁘게 성장시켜둔 것을 ‘돈’으로 사 집에 전시하고 판매자가 주던 사랑을 쏟아보려고 노력했다. 개중에는 벌써 시들시들 삶을 꺼트린 것도 있고, 꺼트리려고 시름시름 앓는 것도 있다. 물론 탱글탱글 새파랗게 활짝 웃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노력이 부족했을까. 비슷한 사랑을 쏟고 비슷한 관리를 해줬건만 이렇게 다른 결과를 보이는 이유가 뭘까. 식물을 돌보는 일은 처음인 나로서는 도통 추측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쯤에서 우리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우리 아빠는 타고난 드루이드다. 내가 결혼한 집에 몇몇 식물을 들여놓은 것도 거의 아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빠는 식물을 좋아한다. 아니, 콕 집어서 식물이라기보다는 ‘뭔가를 키우는 일’을 좋아한다. 아빠는 나도 키웠고, 동생도 키웠고, 우리 강아지들도, 감나무도 단풍나무도 오이 가지 파...그냥 뭐든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책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아빠도 아무 이유 없이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본 아빠는 좀처럼 죽이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정원 있는 집에서 살 때도 내내 그랬다. 집에 계실 때면 정원에만 머물렀다. 매일 정원에서 뭔가를 했다. 가끔 아빠한테 다가가 보면 “그냥 심심하니까 들여다보는 거야” 아빠는 강아지보다 정원을 사랑했다. 우리 야옹이가 뛰어놀다가 맥문동 덤불을 짓이기거나 철쭉을 뜯어놓기라도 하면 야옹이는 아빠한테 혼나고 옥상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아빠는 그렇게 대지를 기반으로 한 모든 식물을 사랑했다. 가꿨다. 그리고 말씀하셨지. “애처롭고, 또 신비롭잖아”

   애처롭고 신비한 그것들을 돌보는 일은 아파트로 와서도 계속됐다. 베란다에 아빠만의 화원을 꾸미고 그 작은 생명들과 함께 했다. 물을 매일 주는 것도 아닐 텐데 매일매일 베란다에서 생명들을 지켜보는 것이 아빠의 일과였다. 내가 아빠를 따라 한답시고 이런저런 예쁜 화분을 사 와서 내 방 책상 위에 올려두면 그것은 틀림없이 한 달 안에 고사 직전을 맞는다. 너무 속상해서 아빠한테 들고 가면 꼭 살아난다. 잊고 있다가 아빠의 화원을 들여다보면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 채로 파릇파릇하게 살아나 있었다. 식물은 참 행복해 보였다고 할까...아빠는 그 화분들을 아빠 화원에 자리 잡게 하고는 다시는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아마 아빠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빠를 질투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할 수 있는데, 저 생명에게 내가 의지가 되어줄 수 있는데, 내가 너희들의 가이아가 될 수 있는데...내 안에 그런 욕심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런 무의식중의 욕망과 결혼 후 느낀 감정들, 주변 환경 등이 겹치는 기막힌 타이밍에 나는 의욕적으로 화분을 들였다. 화분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아예 내 자식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섰다. 뭣도 모르고 아보카도에 손을 댔고, 마침 엄마가 주신 레몬 몇 알을 저미면서 레몬 씨앗도 받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땐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내가 무엇을 키우고 발아하고...하찮게 여겼던 일이다. 나는 못한다 여겼던 일이다.

   지금 여러 식물과 나무를 들이고, 씨앗까지 발아시킬 지경이 되자 비로소 아빠의 마음을 알겠다. 아니 모든 식물러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겠다. 아무것도 아닌 녹색식물들은 내게 위안을 준다. 잠에서 깨서 이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퇴근하면 이들의 잎사귀가 아침과 다름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모르던 새에 돋아난 작고 연약한 잎이 내미는 손과 악수하는 것. 매일 화분의 겉흙, 속흙을 만져 습도를 재고 환기를 시키고, 물을 주고 안 주고를 판단해 이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 식물을 돌보기 위해 쏟는 모든 신경들이 내게 의욕을 주고 활력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초보 발아꾼인 나는 아보카도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 아보카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내가 손으로 쪼갠 아보카도는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아보카도보다 나 자신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내 조바심을 다스리고 싶어서 아보카도를 쪼갰다. 뜬금없지만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관계의 틀어짐은 상대방의 시간, 개성을 기다리거나 존중하지 못하는데서 시작된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을 텐데 나의 시간과 맞지 않음을 탓하며 억지로 쪼개면서 상처를 주는 실수를 반복한다. 내가 이렇게 남편한테 준 상처가 얼마나 될까. 남편이 식물이었다면 내가 죽여버렸을 수도 있었다. 갑자기 소름이(...)

   아보카도가 살더라도, 살지 못하더라도 나는 첫 발아를 시도한 이 씨앗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3개월간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잊지 않으려 해도 곧 잊고 똑같은 실수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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