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2019/01/28 16:03

#7. 그때 틔운 싹 결혼생활

싹을 틔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을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아보카도는 정말 쑥쑥 자랐다. 누가 나 몰래 성장 촉진제를 놓은 줄 알았다. 아보카도는 내게 ‘키우는 기쁨’ 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라도 가진 듯 하루가 다르게 건강히 성장하며 매일같이 내게 기쁨을 선사했다. 누구든 이 글을 보는 사람에게 생육 욕구가 생기도록 잠시 성장 과정을 소개 해야겠다.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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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사진이 가독성(?)이 떨어지나 싶긴 한데, 테크닉은 없고 소개는 하고 싶은 시대에 뒤쳐진 불쌍한 초보 발아꾼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 시점에서 나야말로 사진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다가 감동해버렸다. 꾸준히 열심히 무럭무럭 커 왔구나. 대견한 아보카도ㅠㅠ


2019/01/25 11:35

택시기사와 승객 사이 시선


택시 논란이 뜨겁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아버지가 택시기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택시업 종사자의 딸, 가족이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사태가 마냥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또한 대중의 따가운 시선이 마치 나를 향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물론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들 모두를 대변할 수 있기라도 한 양 나서서 이런 저런 설명과 변명을 하기도 했고, 심하다 싶은 기사와 댓글에 홀로 분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항상 '고급교통수단'이라며 택시 일을 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셨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자가용'을 가족구성원 숫자대로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가 택시를 시작했을 때는 집에 차 한 대 있으면 '좀 사는 집' 소리를 듣던 때 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계시면서 손님을 왕까지는 아니지만 존중하고 고마워하며, 나와 동생 두 자식을 택시로 키워냈다. 

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더 쓸 수도 있지만 그 자체도 편견이므로 여기서 더 나가지 않겠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택시기사 중에는 분명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반절 이상은 된다는 점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 택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한, 자식들을 공부시킨,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택시기사를 옹호하거나 변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썩은 곳이 있다면 도려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수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60만 종사자가 모두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도나 시스템으로 걸러 낼 수 있는데, 이 사회에서 업계 전체를 도려내자고 하는 그 송곳같은 말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아버지가 겪은 일화를 몇 가지 소개한다. 사실 가볍게 일화를 쓰려고 했던 건데, 초장부터 거창해짐ㅋㅋㅋ


1. 
시기 상 작년 말쯤 일어난 일인듯 하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가서 늘어져 있는데, 우편물 하나가 소파 테이블 모서리에 삐죽 튀어나와 눈에 띄었다. 경찰서인지 검찰인지에서 온 우편물이라 아빠가 주차위반이나 속도위반 딱지를 끊은 줄 알았다. '아빠 어디서 주차위반 했노' 하고 있는데, 엄마 말씀이, 그게 아니란다. 사정 설명을 들어보니,

아빠 차를 탄 젊은 남성 고갱님께서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 결제를 카드로 하겠다며 내밀었는데 결제가 되지 않는 카드였다고 한다. 잔액 부족도 아니고, 결제오류. 몇 번을 긁어봐도 결제 오류가 뜨길래 다른 카드를 달라고 했더니 가지고 있는 카드는 그 한 장 뿐이고 현금도 전혀 없으니 내린 후 택시비를 입금해드리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청년을 아빠는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택시를 운전한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식으로 택시비를 떼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자기 전화번호도 아닌 번호를 주고 내린 승객도 있었고, 입금한다고 계좌번호를 받아가서는 감감 무소식인 승객에게도 상처받은 아빠는 그 자리에서 청년의 전화번호가 진짜 번호인지 확인하고, 택시비 5,200원을 반드시 입금시키겠다는 청년의 말을 또한번 믿고 보내줬다. 이미 의도적으로 불량 카드를 내밀고 모르쇠로 일관한 손님에게도 속아 상처받은 적이 있었다는 아빠는 또 어떻게 손님을 믿을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따지면 택시기사도 엄청난 감정노동자다. 속고 또 속아도 (억지로) 믿고 보내줄 수 밖에 없다. 택시종사자에게 택시는 사업장이고, 실랑이하느라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다면 본인에게 큰 손실일뿐더러 초면인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면서 속더라도 '또' 속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택시기사의 특성(?)같은 거다. 

하여간 그 청년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아빠에게 상처를 줬다. 아빠 전화를 피할 뿐만 아니라, 전화를 한 번 받아서는 '그거 얼마나 한다고 제가 안 보내겠어요?' 라고 대답만 하고 고작 5,200원을 지불하지 않았다. 아빠의 문자 연락 또한 모두 피했다. 아니 답장이 왔었다 했나? 기억이 안 난다. 마침 카카오카풀 때문에 어깨가 무거워진 아빠는 택시기사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아빠는 그 길로 그 청년을 경찰에 신고했다.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했나. 다들 알겠지만 사기죄는 형사 사건이다. 더이상 사람들이 택시기사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고,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서는 안 된다고,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이렇게 가볍게 깨져서는 안 된다고. 아빠는 경찰에 청년을 신고했다. 청년은 경찰에 신고 당한 후에도 아빠를 비아냥댔다고 한다. 5,200원이 뭐라고 경찰에 신고를 하냐며 아빠를 도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아빠의 분노는 그 청년이 '청년'이었기 때문에 더 커졌다. 정신이 건강하고 올바르지 못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인생 선배 입장에서 청년과 합의해줄 수 없었다고. 청년의 입장에서 그 택시비는 작은 돈일지 모른다. 아니 요새는 그 돈으로 번듯한 한 끼도 못 먹을 작은 돈이다. 하지만 그 돈을 여러 사람에게 떼이는 택시기사는? 심지어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는데도 두드려 맞는 기사도 있을 지경인데. 

처음에는 합의해주시죠, 라면서 설득하는 경찰도 더이상 아빠에게 합의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년이 지급 약속을 여러번 어겼기 때문이다. 이쯤되니 그 청년이 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만... 그래서 아빠는 끝내 합의해주지 않았고 아빠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다. 그제서야 청년에게 전화가 빗발치고 문자가 빗발쳤다. 제발 합의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문자가 쏟아졌다고. 아빠는 그의 전화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고, 문자에 답장도 해주지 않았다. 보아하니 내가 발견한 우편물은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 합의해줘라, 고 종용하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벌금을 물게 했을거라고 말하는 아빠다. 고작 5,200원 때문에 그 청년은 전과자가 될 뻔 했다. 

손님을 골라 태우고, 태운 손님에게 불친절하고, 운전을 험하게 하는 택시기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택시비를 지불하지 않고, 기사를 폭행하고, 속도를 내지 않고 신호를 위반하지 않고 빈 차선으로 옮기지 않는다고 짜증내는 승객도 있다. 택시기사는 모두 파렴치한이고, 승객은 모두 선의의 피해자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2.
위 일이 있고나서 얼마 안 가 있었던 일이다. 또 부모님 집에 늘어져 있는데 커피 한 잔만 타달라는 아빠의 부탁에 엄마가 웃으면서 장난을 친다.

'당신 그거 있잖아~ 예쁘고 젊은 아가씨가 당신한테 커피 쿠폰인가 뭔가 줬다며. 당신은 그거나 마셔~'

아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빠한테 들은 얘기로 미루어 보아 아빠는 아끼고 아끼다 그 커피를 마시지 못할 것 같다. 사연인즉슨,

아빠 택시를 탔던, 학생으로 보였던 여자 손님이 택시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결제 영수증을 역추적해서 아빠 택시 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했다던가. 기사님 차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 같으니 한 번 찾아봐달라고. 아빠는 차를 멈추고 손님이 탔던 뒷 좌석, 비어있던 앞 좌석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전화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사례금을 어느 정도 드릴테니, 가지고 계시면 돌려주세요' 이런 식으로 나왔다고 했다. 아빠는 또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딸보다 어린 친구한테 마치 '도둑' 취급을 받아서 그 마음을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고. 

아빠는 손님에게 '나는 남의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껏 운전을 해오면서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고, 손님의 전화기 또한 찾아 주려고 노력했으나 내 차에 없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잘 모르면서 사람을 매도하면 안 되는거에요.'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말하고 아빠는 내게 문자 메세지 몇 개를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그 손님은 전화기를 찾았다. '다른 곳에서'. 알고보니 택시를 타기 전 이미 전화기를 분실한 상태였던 것을 모르고 있었고, 전화기는 택시 타기 전 머물던 카페에서 찾았다고. 이전에 택시에 전화기를 놓고 내린 적이 있는데 그때 그 기사님은 택시비를 요구하고, 사례금을 요구하고 돌려주지 않았던가, 않으려고 했다던가, 그런 경험이 있어서 기사님도 그러신 줄 알았다며, 영업을 방해하고 기사님을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지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있었다. 

짧은 문자 몇 개를 주고받은 내용이 있었지만 그것까지는 생략하겠다. 그 손님은 '제 편견으로 시간과 마음을 상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며 아빠에게 -어린 손님 답게- 스타벅스 카라멜 마끼아또 커피 쿠폰을 보냈다. '운행하시다 당 떨어지고 피곤하실 때 드세요' 라면서. 

이 글을 쓰면서도 울컥하지만, 나는 그 날 너무나 감동했다. 아빠도 어지간히 감동했는지, 엄마 말에 따르면 그 문자를 보고 또 보고 하셨다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게 어디 쉽나. 게다가 속여 먹으려는 사람도 있는데, 미안하다고 문자까지 보내주는 '바른 청년'이라니. 낯선 이에게 받은 상처가 크듯 낯선 이에게 받은 감동 역시 큰 모양이다. 아빠는 기프티콘 같은 건 이용할 줄 모른다. '그냥 내밀기만 하면 커피를 주는거냐?' 라고 물어보시는데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안 마실거면서 뭐 ㅋㅋㅋ


마침 아빠한테 일어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은 무작정 택시기사의 편만 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택시대란(?)은 택시업계와 승객의 대립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어느 부분이 썩었다고 해서 전체를 들어낼 일도 아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제도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택시기사와 승객 양쪽이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바생에게 존대말 쓰기, 알바생을 인격체로 대하기, 이런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그것은 알바생의 위신을 높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일에서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자는 말 아니겠나. 아무리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사는 일이라 해도 사람 위에 돈 있을 수 없다. 적은 돈을 받는다고 승객에게 함부로 하지 말고, 댓가를 지불한다고 해서 기사에게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돈이 오고 가기 전에 우리는 사람이다. 서로에 대한 예의는 서로에게 필요하다. 


쓰다보니 뭔가 대승적인 글로 바뀌었는데 ㅋㅋㅋ 그냥, 편견은 없앴으면 하는 마음에 소개해 봄. 



2019/01/21 20:08

#12. 인간성을 잃어버린 나와의 작별 정독


한강 작가의 글은 건조하다. 미사여구로 감정을 싣지 않는다. 쓸쓸하다. 그렇지만 따뜻하다. 건조한듯 따뜻한 시선으로 슬프고 소외된 삶을 어루만진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에서도 그랬다. 마음이 너무 아파 띄엄띄엄 읽다 그나마 다 읽지도 못하고 책꽂이에 잠긴 '소년이 온다'가 떠오른다.

여러 유명한 작가들의 솜씨가 실린 이 책을 나는 오직 한강 작가의 단편, '작별'을 보기 위해 샀다.

나는 단편에 손을 잘 대지 않는 편이다. 일부러는 아니고, 어쩐지 가볍게 느껴지는 선입견, 그리고 짧은 호흡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단편은 시와 마찬가지로 함축된 메시지가 장편보다 깊고, 정곡을 찌르기 때문에 너무 감정적이고, 잘 휩쓸리는 내가 그 점을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즉 단편에 손을 잘 대지 않는 이유는 내가 시를 멀리하는 이유와 같다. 함축된 문장은 내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까...시와 단편을 읽기엔 내 능력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후. 약점을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건 정말 힘든일이야 ;ㅁ;

이 책은 내가 만드는 신문에 발췌할만한 구절이 없을까 해서 인터넷 서점의 미리 보기로 몇 페이지 봤던 건데, 서너 페이지만에 완전히 몰입했을 뿐만 아니라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뒤가 너무나 궁금했던 점, 극 사실주의 작가인 줄 알았던 저자에게 느낀 의외성 등 당장 뒤를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에 갔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기다림 없이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서 구매했다.

'작별'이라는 작품은 제12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 했고, 책에는 본선(?)까지 진출했다 아깝게 수상을 놓친 예닐곱 편이 함께 실려 있다. '안녕 주정뱅이'라는 작품으로 만나본 권여선 작가의 단편도 포함이다.

작별은 '존재와 소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경계에 대해 말하다'라고 한 줄 요약 되어 있다. 존재와 소멸이라는 매우 형이상학적이면서 추상적 개념을 굳이 어려운 말로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려하지 않고 '눈사람'이라는 소재를 이용한 것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눈사람은 흔한 소재다. 겨울의 대표 이미지고, 동심과 순수 그리고 놀이 등 여러가지 긍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벌써 개봉한지 5년이 다 돼가는 대흥행작 '겨울 왕국'에서도 눈사람이 등장해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인공 자매를 돕고 화해를 이끄는 '절대 선한 존재'로 활약 했을 정도다. 달리 말하면 이미지가 워낙 고정되어 식상하기 쉬운 것도 눈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치 인어공주의 물거품처럼 눈사람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특징에 착안해 이야기를 풀어낸 점이 독특하고 신선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중독된 나로서는, 사람이 눈사람으로 변하면.......그냥 추운데서 눈사람으로 변한 사람들끼리 잘 살거나, 나를 눈사람으로 만든 악마를 찾아 모험을 떠나다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 힘으로 악마를 물리친 후 잘 살았을 거라고, 고작 그런 이야기나 만들어 냈겠지.(ㅋㅋㅋ)

'작별'은 주인공이 버스정류장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연인을 기다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만 인간이었다가 깜박 잠이 든 사이 눈사람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나는 그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괜찮을까요? 내가 눈사람이 되었는데요. (p.16)

곧 도착할 남자친구에게 눈사람이 됐다고 무덤덤히 고백하는 말투가 귀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피식 웃어버렸다. 왜 놀라지 않을까. 나의 피부와 눈동자, 머리카락, 두 다리가 눈뭉치로 변해 버렸는데 어째서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을까. 어쩌면 진짜 '나'를 잃고 사회가 정해준 역할에 소비되는 현대인으로서 그는 자신이 사람 모양이든, 눈사람이든, 뭐든 상관없었던 걸지 모른다.

작년인지 재작년 언제쯤 아주 인상깊게 읽은 장강명 작가의 '표백'이 생각났다. 각각의 다채로운 색깔을 갖고 태어나 점점 선명하고 영롱하게 성장하지만, 성년이 되어 사회로 던져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각각의 개성과 꿈과 특징을 모두 표백당하고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기성세대가 필요한대로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을 독한 어조로 비판했던 '표백'을 읽고 심하게 감정이입해 한동안 우울했었다.

눈사람도 마치 표백된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나 자신도 없고, 영혼도 사라져 버려 살짝만 자극해도 부스러지는 나약한 인간, 그 나약한 몸이나마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당하더라도 다시 사회가 시키는대로 살 수밖에 없는 빼앗긴 인간. 꿈도 바람도 희망도 없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회사가 정해준 가치대로 살 뿐인 사람의 몸이 오장 육부가 붙어 있으면 어떻고, 눈사람이면 어떻단 말인가.

눈사람이 된 후 그가 풀어내는 그의 삶은 쓸쓸하고 힘겹고 정체되어 활력을 잃은 지 오래된, 그야말로 삶을 겨우 '버티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는 스물 셋에 결혼해 이듬해 아이를 낳고, 17살 아들을 10년 째 혼자 키우고 있다. 작가는 이혼녀로써의 삶이 얼마나 각박하고 힘든지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아이 딸린 이혼녀'의 삶이란 굳이 절절한 단어로 묘사하지 않아도 누구나 예상가능하다.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에 사회의 따가운 시선까지 견뎌야만 하는 고행길을 걸어야 한다. 자신의 인생 대신 '가족'을 선택한 이들은 관심, 애정,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빈곤을 견뎌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대학에서 졸업하자마자 아이를 낳은 주인공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차별과 편견에 시달려왔음이 틀림없었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쉽게 그만둘 수 없었을 테고, 아이에게 엄마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을 테고, 그러면서도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살아왔을 터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엄마를 답답해 하고 멀리하지만 그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는 그 상황에서 또 한 번 좌절을 느꼈을 터다.

힘든 와중에 '그의 경력과 실력이 비슷한 사람을 같은 월급으로는 쓸 수 없기 때문에 내버려두고 있던(p.26)'그에게 회사가 내민 것은 '권고사직'. 힘든 와중에 그가 만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해결책도, 해결 의지도 없는 가난에 수인처럼 갇혀 있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고 나눌 수 없는(p.31)' 일곱 살 연하의 취준생 연인. 고달픈 그의 삶이 누적돼 그는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표백'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퇴근 무렵이면 언제나 어깨가 아팠고, 특히 머리와 목을 연결하는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직장인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몸의 방향을 바꾸기도 어려운 지하철에서, 언제나처럼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했다. 자신이 손목을 끼우고 매달려 있는 끈끈한 플라스틱 손잡이, 캄캄한 지하 터널을 향해 뚫린 검은 차창, 어깨에 매달려 있는 낡은 가방, 그 속에 소리 없이 담겨 있는 지갑이나 필통이라고 상상했다. (p.28)


눈사람으로 변해버리자마자 그는 자신의 죽음, 소멸을 예상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할 준비를 했다. 아들을 만났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고, 아들의 후견인이 되어 줘야 할 남동생에게...연락을 하려다 말았다. 그가 삶의 끝을 준비한 것은 눈사람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유서를 남기는 등 갑작스럽고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물처럼 변해가는 자신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릴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다. 혹자는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몰라서 두려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장 죽음이 무서운 것은 죽은 후 어떻게 될지 몰라서라기 보다는 남겨진 모든 인연과의 이별이 슬프고 외롭기 때문인 것 같다. 죽음은 외롭다. 함께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은 공평하다. 누구나 죽는다. 불공평과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가 됐지만 단 하나,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더 오래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은 죽음을 앞둔 마땅한 태도일까.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만났을 때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이 뜨거워져 녹아내리고, 눈물이 흘러 눈두덩과 두 뺨이 녹았다. 연인을 만나서는 함께 밥을 먹을 수도 손을 잡거나 가까이 안을 수도 없었다. 눈사람이 된 그가 녹는 것을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처음 만든 눈사람을 간직하고 싶어 냉동실에 넣어뒀지만, 구멍이 숭숭 나서 결국은 녹아버린 것처럼 눈사람은 결국 소멸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는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하지 않았다. 따뜻한 체온과 피부를 가지고 있던 오래 전부터 '사물'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던 그다. 상황을 비관하는 대신 조용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나 자신의 소멸을 준비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슬펐고, 한편 고귀했다. 삶의 끝 자락에서 '나는 언제까지 사람일까' 번뇌하는 그에게서 '인간다움'을 느꼈다.


언제까지가 사람일까. 그의 몸은 눈사람이 됐지만, 심장은 뜨거웠고, 마음이 아프면 눈물이 흘렀다. 몸이 녹아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은 사람과 따뜻한 키스로 이별한다. 존재'와 '존재가 아님'의 경계는 어디일까. 사람과 사물의 경계는 어디일까.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눈과 귀와 입술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 정수리부터 녹은 머리가, 눈 녹은 물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내리면? 심장부터 발끝까지 형상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그냥 끝이야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여 그녀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홀가분했다. 미치도록 후련했다. 아니, 억울했다. 이가 갈리게 분했다. 아니 아무것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p.53)


내가 눈사람이 됐고,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소름끼치고 무섭고 막막한데, 글을 읽는 동안 아무것도 막막하지 않았다. 나도 그를 따라 편안하게(?) 소멸을 받아들이며 내가 작별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현실이 그에게 준 것은 잔인하지만 미치도록 딱딱한 현실 속에서도 내가 살아가야 할, 나를 인간답게 살게 할 이유들은 분명히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 가지 화두를 오랫동안 생각할 것 같다.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이 세상과 어떻게 작별할 것인가. 인간성을 잃은 것이 죽음일까, 눈사람이 되는 것이 죽음일까.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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