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피터 홀린스/포레스트북스
오랜만에 독후감을 쓴다.
그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읽고 나서 생각을 안 했다. 내게 꾸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여간해서 개선이 잘 안 된다. 노오력을 안 한다고밖에 ㅎㅎㅎ
마침 마감이 끝났고, 마침 책을 다 읽었고, 마침 이 책은 쉬운 책이었다.
언젠가 대전 대흥동에 놀러가서 '도시여행자'라는 서점에서 책을 산 적이 있다. 그때 받은 책갈피를 대수롭지 않게 집에 뿌려 두었는데, 그 후 부산여행에서 들른 작은 책방에서도 왠지 시리즈인듯한 책갈피를 주는 것이 아닌가. 강박증도 조금, 편집증도 조금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시리즈물(?)인 것을 알자마자 모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청주에 갈 기회가 생겨 청주의 독립서점을 굳이 검색해 굳이 가서 책을 한 권 샀는데 거기서도 받을 줄 알았던 책갈피를....못 받았다. 이건 뭐 광역시끼리만 하는건가? ㅠㅠ 무슨 말이냐면, 그러니까 지금 읽은 이 책을 청주에서 사 왔다는 말을 하려고 이렇게(...)
벌써 두 번의 서점 방문에서 '약간의 거리를 둔다' '혼자가 좋다' 이런 책들을 고른 나를 알고 있었던 남편은 그 책을 내미는 나에게 '살 줄 알았다'라고 알은 척을 했다. ㅎㅎㅎ

나는 혼자 하는 삶, 혼자 사는 삶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살아가는 하는 방식을 동경하고 롤모델 삼고 있는 것이 맞다.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고 또한 타인에게 영향받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고. 내면의 힘을 기르고 행복이 무엇인지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내가 할 수도 없는 것을 하려고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고, 괜한 강박에 시달리면서 나 스스로를 들볶지 않기 위해서 소소히 혼자 살면서도 충분히 행복한 그런 미니멀라이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싶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본다. 혼자 사는 방식은 참으로 욕심이 없고 번뇌가 없다. 하루하루 태어난 날로부터 멀어지면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는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죽기 직전까지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조금 더 살고 싶다'라는 욕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제목은 아주 완벽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은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내향적' '외향적'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고도 말한다. 더 보태자면 내향적외향인 사람과 외향적내향인 사람도 존재하며, 그것은 타고 날 수 밖에 없다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누가 더 훌륭하다고 판단 내릴 수 없음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언급했다.
나는 '외향적'이기를 강요당하며 자란 세대다. 내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살았던 1990년과 2000년대 우리나라는 엄청난 성장기였다. 내가 고작 30년 조금 넘게 살았는데 내 인생 속에는 '옛날'도 있고 '현대'도 있다.(여기서 옛날은 내 10대 때의 모습을 지금 세대에게 보여주면 50년 전 아니에요? 라고 말할 정도라는 것임) 그만큼 우리나라는 그 짧은 사이에 어마어마한 변혁기를 겪었다.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됐다는 추상적인 발전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엄청난 발전이 있었고 우리는 그만큼 성숙했다.
그런데 이 성숙은 제대로 햇빛을 받고 자란 성숙이 아니라 자외선램프같은 것으로 쪼여 억지로 성장하게 한 성숙이다.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바꾼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받아들여' 식으로 변화했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 '나라의 기둥'이었던 우리들은 리더십, 앞서는 법, 성공학개론 등을 마치 수면마취주사 놓듯 한 번에 맞고 몸과 정신이 거의 마비된 세대가 됐다. 누구나 리더십이 있어야 훌륭한 사람이 될거라고 했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한 발 앞서야 했고, 성공신화들이 바이블처럼 읽혔다.
그러나 이것은 나 개인의 사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통계학자나 연구자가 아니므로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분명 그랬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증언할 수 있는 그 시절의 사람이다.
저자는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나 '외향적'이기를 강요당하면서 살았다는 것.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성질은 '외향적'이라는 것. 이런 주입식 선입견에 사로잡혀 '내향적'성질, 말하자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루저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는 것.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은 그저 에너지를 운용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교활동을 즐기면서 에너지를 얻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조용히 사색하면서 충전을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내향적인 사람이 덜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그동안 '힘들었을' 내향적인 사람들을 차곡차곡 위로해줬다.
그래서 빨려들듯이 읽어내려갔다. 왜냐하면 나는 무지하게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그리고 이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이 마치 점쟁이가 사주를 봐주듯, 작업남이 손금을 봐주듯 딱 알맞은 나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서 내면이 충만해지면 곧장 주변에 나와 관계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또한 운동, 영화관 등 외부 활동들을 하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그렇지만 어느 수준만큼 그것이 충족되면 나는 또 집으로 와야 한다. 그리고 며칠 집에 있어야 한다. 책도 읽고 집 청소와 정리 등을 하면서 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은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 내가 필요한 행위들이다. 나는 친구를 만나고 싶지만, 몇 날 며칠 친구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린다. 영화는 매니아 수준이지만 항상 무조건 영화관에 가는 것도 아니다. 춤을 추러 다니지만 춤만 추고 관계는 크게 맺지 않는다. 관계가 너무 많아지면 감당을 못한다.
나는 이런 나의 성질이 매우 불만이었다. 외부활동을 좋아하는데 집에 있는 것도 좋아하는 상반되는 기질 때문이었다. 나는 일관적이지 않은 사람인가?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회주의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거 아닐까? 자기 편할 땐 나와 놀고, 싫으면 없고...제멋대로라는 뒷말을 듣게 되는 거 아닐까? 고쳐야 되는데 왜 고치지 못할까.
그랬던 나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위로와 위안을 얻었을밖에. 저자는 나의 기질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런 기질이 이상한 것도 아니며 사람이라면 아주 당연하게 가지는 '뇌활동'이라고 정의해줬다. 사람은 누구나 나 같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외향적인 사람도 없고, 완벽하게 내향적인 사람도 없으며 누구나 조금씩 두 성질이 섞여 조금더 많이 보유한 쪽의 기질이 드러나보일 뿐이라고.
이 책은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연구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 그런지 중언부언 비슷한 말이 많고 결국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가 없다. 정의를 내려줬으면, 어떻게 살면 더 좋겠다고도 해줘야 하는데 '알려줬으니 이제 알아서 잘 사세요 바이바이^-^' 라고 끝맺으니 ㅎㅎ 뭐 모든 이런 종류의 책이 그렇듯 그런 마무리를 했다.
심리학의 맹점인 것 같다. 인간 기질은 각각 모두 다르므로 분석은 하지만 대안은 결국 병목처럼 한가지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약간 무리한 비유일 수도 있는데,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 그 유명한 첫문장에 대자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기질이 있지만 해결방법은 비슷하다'
이것이야 말로 난제 아닌가? 페르마의 정리 따위가 난제가 아니라 말이다.(물론 페르마의 정리는 풀렸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완독해버린 읽기 쉬우면서도 공감되면서도 약간 허무한 책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나를 잘 알면 내 나름의 해결책을 찾던지, 내 마음이 편해지던지
뭐 하나는 건지고 깨달으며 살 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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