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2019/01/25 11:35

택시기사와 승객 사이 시선


택시 논란이 뜨겁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아버지가 택시기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택시업 종사자의 딸, 가족이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사태가 마냥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또한 대중의 따가운 시선이 마치 나를 향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물론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들 모두를 대변할 수 있기라도 한 양 나서서 이런 저런 설명과 변명을 하기도 했고, 심하다 싶은 기사와 댓글에 홀로 분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항상 '고급교통수단'이라며 택시 일을 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셨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자가용'을 가족구성원 숫자대로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가 택시를 시작했을 때는 집에 차 한 대 있으면 '좀 사는 집' 소리를 듣던 때 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계시면서 손님을 왕까지는 아니지만 존중하고 고마워하며, 나와 동생 두 자식을 택시로 키워냈다. 

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더 쓸 수도 있지만 그 자체도 편견이므로 여기서 더 나가지 않겠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택시기사 중에는 분명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반절 이상은 된다는 점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 택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한, 자식들을 공부시킨,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택시기사를 옹호하거나 변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썩은 곳이 있다면 도려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수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60만 종사자가 모두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도나 시스템으로 걸러 낼 수 있는데, 이 사회에서 업계 전체를 도려내자고 하는 그 송곳같은 말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아버지가 겪은 일화를 몇 가지 소개한다. 사실 가볍게 일화를 쓰려고 했던 건데, 초장부터 거창해짐ㅋㅋㅋ


1. 
시기 상 작년 말쯤 일어난 일인듯 하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가서 늘어져 있는데, 우편물 하나가 소파 테이블 모서리에 삐죽 튀어나와 눈에 띄었다. 경찰서인지 검찰인지에서 온 우편물이라 아빠가 주차위반이나 속도위반 딱지를 끊은 줄 알았다. '아빠 어디서 주차위반 했노' 하고 있는데, 엄마 말씀이, 그게 아니란다. 사정 설명을 들어보니,

아빠 차를 탄 젊은 남성 고갱님께서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 결제를 카드로 하겠다며 내밀었는데 결제가 되지 않는 카드였다고 한다. 잔액 부족도 아니고, 결제오류. 몇 번을 긁어봐도 결제 오류가 뜨길래 다른 카드를 달라고 했더니 가지고 있는 카드는 그 한 장 뿐이고 현금도 전혀 없으니 내린 후 택시비를 입금해드리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청년을 아빠는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택시를 운전한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식으로 택시비를 떼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자기 전화번호도 아닌 번호를 주고 내린 승객도 있었고, 입금한다고 계좌번호를 받아가서는 감감 무소식인 승객에게도 상처받은 아빠는 그 자리에서 청년의 전화번호가 진짜 번호인지 확인하고, 택시비 5,200원을 반드시 입금시키겠다는 청년의 말을 또한번 믿고 보내줬다. 이미 의도적으로 불량 카드를 내밀고 모르쇠로 일관한 손님에게도 속아 상처받은 적이 있었다는 아빠는 또 어떻게 손님을 믿을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따지면 택시기사도 엄청난 감정노동자다. 속고 또 속아도 (억지로) 믿고 보내줄 수 밖에 없다. 택시종사자에게 택시는 사업장이고, 실랑이하느라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다면 본인에게 큰 손실일뿐더러 초면인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면서 속더라도 '또' 속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택시기사의 특성(?)같은 거다. 

하여간 그 청년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아빠에게 상처를 줬다. 아빠 전화를 피할 뿐만 아니라, 전화를 한 번 받아서는 '그거 얼마나 한다고 제가 안 보내겠어요?' 라고 대답만 하고 고작 5,200원을 지불하지 않았다. 아빠의 문자 연락 또한 모두 피했다. 아니 답장이 왔었다 했나? 기억이 안 난다. 마침 카카오카풀 때문에 어깨가 무거워진 아빠는 택시기사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아빠는 그 길로 그 청년을 경찰에 신고했다.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했나. 다들 알겠지만 사기죄는 형사 사건이다. 더이상 사람들이 택시기사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고,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서는 안 된다고,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이렇게 가볍게 깨져서는 안 된다고. 아빠는 경찰에 청년을 신고했다. 청년은 경찰에 신고 당한 후에도 아빠를 비아냥댔다고 한다. 5,200원이 뭐라고 경찰에 신고를 하냐며 아빠를 도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아빠의 분노는 그 청년이 '청년'이었기 때문에 더 커졌다. 정신이 건강하고 올바르지 못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인생 선배 입장에서 청년과 합의해줄 수 없었다고. 청년의 입장에서 그 택시비는 작은 돈일지 모른다. 아니 요새는 그 돈으로 번듯한 한 끼도 못 먹을 작은 돈이다. 하지만 그 돈을 여러 사람에게 떼이는 택시기사는? 심지어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는데도 두드려 맞는 기사도 있을 지경인데. 

처음에는 합의해주시죠, 라면서 설득하는 경찰도 더이상 아빠에게 합의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년이 지급 약속을 여러번 어겼기 때문이다. 이쯤되니 그 청년이 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만... 그래서 아빠는 끝내 합의해주지 않았고 아빠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다. 그제서야 청년에게 전화가 빗발치고 문자가 빗발쳤다. 제발 합의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문자가 쏟아졌다고. 아빠는 그의 전화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고, 문자에 답장도 해주지 않았다. 보아하니 내가 발견한 우편물은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 합의해줘라, 고 종용하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벌금을 물게 했을거라고 말하는 아빠다. 고작 5,200원 때문에 그 청년은 전과자가 될 뻔 했다. 

손님을 골라 태우고, 태운 손님에게 불친절하고, 운전을 험하게 하는 택시기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택시비를 지불하지 않고, 기사를 폭행하고, 속도를 내지 않고 신호를 위반하지 않고 빈 차선으로 옮기지 않는다고 짜증내는 승객도 있다. 택시기사는 모두 파렴치한이고, 승객은 모두 선의의 피해자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2.
위 일이 있고나서 얼마 안 가 있었던 일이다. 또 부모님 집에 늘어져 있는데 커피 한 잔만 타달라는 아빠의 부탁에 엄마가 웃으면서 장난을 친다.

'당신 그거 있잖아~ 예쁘고 젊은 아가씨가 당신한테 커피 쿠폰인가 뭔가 줬다며. 당신은 그거나 마셔~'

아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빠한테 들은 얘기로 미루어 보아 아빠는 아끼고 아끼다 그 커피를 마시지 못할 것 같다. 사연인즉슨,

아빠 택시를 탔던, 학생으로 보였던 여자 손님이 택시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결제 영수증을 역추적해서 아빠 택시 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했다던가. 기사님 차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 같으니 한 번 찾아봐달라고. 아빠는 차를 멈추고 손님이 탔던 뒷 좌석, 비어있던 앞 좌석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전화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사례금을 어느 정도 드릴테니, 가지고 계시면 돌려주세요' 이런 식으로 나왔다고 했다. 아빠는 또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딸보다 어린 친구한테 마치 '도둑' 취급을 받아서 그 마음을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고. 

아빠는 손님에게 '나는 남의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껏 운전을 해오면서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고, 손님의 전화기 또한 찾아 주려고 노력했으나 내 차에 없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잘 모르면서 사람을 매도하면 안 되는거에요.'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말하고 아빠는 내게 문자 메세지 몇 개를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그 손님은 전화기를 찾았다. '다른 곳에서'. 알고보니 택시를 타기 전 이미 전화기를 분실한 상태였던 것을 모르고 있었고, 전화기는 택시 타기 전 머물던 카페에서 찾았다고. 이전에 택시에 전화기를 놓고 내린 적이 있는데 그때 그 기사님은 택시비를 요구하고, 사례금을 요구하고 돌려주지 않았던가, 않으려고 했다던가, 그런 경험이 있어서 기사님도 그러신 줄 알았다며, 영업을 방해하고 기사님을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지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있었다. 

짧은 문자 몇 개를 주고받은 내용이 있었지만 그것까지는 생략하겠다. 그 손님은 '제 편견으로 시간과 마음을 상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며 아빠에게 -어린 손님 답게- 스타벅스 카라멜 마끼아또 커피 쿠폰을 보냈다. '운행하시다 당 떨어지고 피곤하실 때 드세요' 라면서. 

이 글을 쓰면서도 울컥하지만, 나는 그 날 너무나 감동했다. 아빠도 어지간히 감동했는지, 엄마 말에 따르면 그 문자를 보고 또 보고 하셨다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게 어디 쉽나. 게다가 속여 먹으려는 사람도 있는데, 미안하다고 문자까지 보내주는 '바른 청년'이라니. 낯선 이에게 받은 상처가 크듯 낯선 이에게 받은 감동 역시 큰 모양이다. 아빠는 기프티콘 같은 건 이용할 줄 모른다. '그냥 내밀기만 하면 커피를 주는거냐?' 라고 물어보시는데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안 마실거면서 뭐 ㅋㅋㅋ


마침 아빠한테 일어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은 무작정 택시기사의 편만 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택시대란(?)은 택시업계와 승객의 대립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어느 부분이 썩었다고 해서 전체를 들어낼 일도 아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제도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택시기사와 승객 양쪽이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바생에게 존대말 쓰기, 알바생을 인격체로 대하기, 이런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그것은 알바생의 위신을 높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일에서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자는 말 아니겠나. 아무리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사는 일이라 해도 사람 위에 돈 있을 수 없다. 적은 돈을 받는다고 승객에게 함부로 하지 말고, 댓가를 지불한다고 해서 기사에게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돈이 오고 가기 전에 우리는 사람이다. 서로에 대한 예의는 서로에게 필요하다. 


쓰다보니 뭔가 대승적인 글로 바뀌었는데 ㅋㅋㅋ 그냥, 편견은 없앴으면 하는 마음에 소개해 봄. 



덧글

  • 이요 2019/01/25 12:12 # 답글

    아...울었어요. ㅠ.ㅠ (아버님 쿠폰 쓰시라고 하세요. 다음에 다시 쓸 순 없지만, 핸드폰에 쿠폰 이미지는 계속 남아있으니까 계속 볼 수 있다고...^^;;;)
  • 아삭 2019/01/25 15:18 #

    같이 감동해주셔서 고맙습니다ㅠㅠ 쿠폰은 안 쓰심 내가 뺏어 쓰겠다고 협박(???)해야겠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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